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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의 삶

작곡가 윤이상
  • 생애
  • 내 고향 통영
  • 생가터
  • 윤이상 기념관
  • 독일에서의 발자취
  • 윤이상 음악당

윤이상은 1917년 9월 17일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났고 통영에서 자랐다.
해방 전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첼로와 작곡을 공부했다. 일제치하에서 항일조직 결성을 시도하던 중 한글 가사에 곡을 붙인 것이 발각되어 구속되기도 했다.

1945년 해방 후 교편생활을 하면서 통영현악사중주단을 창단, 첼리스트로 활동했고, 통영예술계의 선후배들과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어 계몽활동에 열정을 바쳤다. 1950년 가곡집 『달무리』를 출간하였고 초등학생들을 위하여 작곡한 많은 동요들도 같은 해에 발간된 검인정 교과서에 실렸다.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 중에도 동료 작곡가들과 전시작곡가협회를 결성하여 한국의 현대음악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였으며, 작곡과 함께 수많은 글로써 한국 음악계에 공헌했다.

중고등학교 및 대학에서 가르치던 윤이상은 1955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을 계기로 유학을 결심, 1956년 프랑스 파리고등음악원에서 수학했고, 1957년 독일로 이주해 서베를린 음악대학에서 2년 간 수학했다.
1959년 다름슈타트에서 초연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이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유럽 현대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죽마고우도 만나고 늘 벽에 붙여 놓고 바라보던 강서고분을 답사하고자 1963년 평양을 방문한 윤이상은 1967년 이른바 동백림 사건 때 박정희 정권에 의해 납치되었고, 국제예술계의 도움으로 1969년 사면될 때까지 감옥과 병원을 오갔다.

1969년 독일로 귀환한 윤이상은 이후 인권의 사각지대를 경고하고 인류의 평화를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걸작들을 썼나갔다. 1977년부터 1987년까지 베를린 예술대학 작곡과 정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는데, 그의 영향력은 독일을 넘어 미국, 일본, 중국, 한국, 북한 등에까지 이르고 있다. 퇴임 이후에도 작곡과 활발한 강연 및 교육을 통하여 세계 음악계에 이바지했던 윤이상은 1995년 11월 3일 베를린 자택에서 별세했고, 베를린 시가 인류에 명예로운 유산을 남긴 인물을 위해 조성한 가토우 지역의 특별 묘지에 안장되었다.

윤이상 이미지 3개
TONGYEONG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통영국제음악제 20143.28 ~ 4.3